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더럼 W. 스티븐스 (문단 편집) === [[제1차 한일협약]]과 [[대한제국]] 외교 고문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The Archive of Korean Histoy.jpg|width=100%]]}}} || || 외교고문 재임 당시, 사인교를 타고 출근하는 스티븐스. || 이후 스티븐스는 [[일본]]의 외교가 [[이노우에 가오루]]와 동행하여 [[대한제국]]으로 건너가서, 한국 이름 '수지분(須知芬)' 이라는 이름하에 대한 제국에서 일본을 대변하는 역할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. >2. 대한 정부는 '''대일본 정부가 추천하는 외국인''' 한명을 외무 고문으로 하여 외부에 용빙하고, '''외교에 관한 요무는 일체 그 의견을 물어 실시'''할 것 >---- >[[제1차 한일협약]] 중에서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으로 일본은 대한 제국에 1명의 서양인 외교 고문과 1명의 일본인 재정 고문을 둘 것을 강제하였다. 당연히 서양인 외교 고문은 스티븐스를 의미하는 것이었고[* 일본인 재정 고문은 [[화폐정리사업]]을 시행한 메가타 다네타로(目賀田 種大郞, 1853~1926, [[가쓰 가이슈]]의 사위이며, 일본 최초의 [[하버드 대학교]] [[로스쿨]] 졸업자이기도 하다.)이다.],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으로부터 [[대한제국]] 외부 고문관 자리를 얻어낸다. 이 당시 [[러일전쟁]]이 발발하고 이듬해 일본이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스티븐스는 [[을사조약]] 체결과 [[한일병합]]의 진로를 트게 되는 소통자 역할을 하게 된다. 외무 고문으로서 스티븐스는 대한제국 백성들의 하와이 이민을 방해하는 한편,[* 이는 하와이 내 일본계 이민들의 세력이 약화되지 않게 하기 위한 공작이었다. 스티븐스 개인적으로는 한국인 이민의 유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하나, 결국에는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이를 반대했다.] 미국 언론을 대상으로 일본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반일 정서를 진정시키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